스토리매거진

시청각장애인과 세상을 연결하는 헬렌켈러센터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The world is full of suffering but it is also full of people overcoming it.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라는 삼중고를 극복한 장애인 인권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헬렌켈러의 말입니다.

100여 년이 지나 장애인의 인권이 나아지는 과정에서도 사각지대는 있습니다. 바로 ‘시청각장애인’입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시청각 장애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모두 있는 장애인을 말합니다. 단일장애(시각 또는 청각)와는 특성이 전혀 다른 장애 유형이기 때문에 별도의 지원 체계가 필요합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상에는 시청각장애인은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인정되지 않고 시각 혹은 청각장애에 다른 장애 유형을 추가 인정받아야 합니다.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별도의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도 없어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인구 1만 명 당 1.8명의 시청각장애인이 있다는 외국 현황에 따라 우리나라는 1만 명 정도의 시청각장애인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은 2019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여 헬렌 켈러 법안(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 촉구를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시민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2019년 9월에 1만 8천여 명의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였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2019년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독립적인 별도의 법률은 아니지만,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적인 근거를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자세히 보기 ▶ 


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을 위한 국민 서명 제출

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을 위한 국민 서명 제출


국내 최초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헬렌켈러센터

2019년 4월, 국내 최초 시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가 개소되었습니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을 옹호하고, 그들이 완전히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시각과 청각에 모두 장애가 있는 시청각장애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권익 옹호와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자립을 위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헬렌켈러센터 설립 당시 우리나라에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법과 제도가 없었습니다. 국내의 시청각장애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지난 1968년 ‘헬렌켈러법’을 제정해 전국 11곳의 헬렌켈러센터를 운영 중이며, 일본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활동 도우미 파견 사업을 시행하고, 헬렌켈러센터를 운영하는 등 국가적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중증 장애임에도 정책 부재 및 사회적 무관심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은둔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을 발굴하는 일은 세상과 단절된 수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첫걸음입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장애 유형인 시청각 장애에 대해 알리고, 발굴한 시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회참여와 자립을 도모하는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21년 11월에는 희망TV SBS 방송을 통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손에 #헬렌켈러를_찾습니다 문구를 적은 후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챌린지를 통해 시청각장애인에 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할 수 있었습니다.


시청각장애인 돕기 SNS 챌린지 참여한 연예인들


각종 정보에 취약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노력 

최근 자연재해나 화재, 사고 등의 증가로 안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위기 대응 매뉴얼, 대피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있으나 장애인을 포함해 아동이나 노인 등 인지·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매뉴얼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나마 현존하는 매뉴얼의 대부분은 휠체어 사용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시청각장애인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비상 상황의 인지와 정보 입수가 어렵고, 의사 전달과 이동에 제약이 많아 재해 시 특히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장애인복지법이 정한 장애 유형에도 속하지 않아 이들만을 위한 피난 매뉴얼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안전한 시청각장애인의 대피를 위한 제도 개선과 피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2021년 10월부터 ‘시청각장애인의 재해 시 피난 계획에 관한 연구’에 착수하여 1년여 만인 2022년 11월에 연구 발표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김명희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 상임이사가 책임연구를 맡고 김종인(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 윤영삼(건국대학교 연구교수), 권효순(국립재활원 연구관)이 공동연구를 맡은 본 연구는 시청각장애인의 재해 시 피난 관련 국내·외 제도 고찰, 시청각장애인들의 피난 행동 특성 및 주거 공간 실태 조사·분석,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피난 가이드라인 제시로 이뤄졌습니다. 특히 피난 가이드라인에서는 피난 경로의 공간 계획, 응급과 구조와 관련된 설비 등 안전한 공간 설계 지침과 재해 대비 사전 준비물, 재해 시 행동 요령, 장애 유형별(전맹약시·전농난청) 대응 방법 등 피난 매뉴얼을 제안하였습니다.


시청각장애인 피난 연구 결과 발표회 포스터

시청각장애인 피난 연구 결과 발표회 포스터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장애인들의 어려움도 커졌는데 특히 시청각장애인은 정확한 감염 정보를 얻기도, 또 방역 수칙을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은 촉수화와 촉점화라는 별도의 언어로 소통하는데 복잡한 코로나19 정보를 받기 어렵습니다. 촉수화는 수화를 손으로 만져서 대화하는 방법이고, 촉점화는 점자체계를 활용해 손가락으로 상대의 손등에 점자를 찍는 방법입니다. 반드시 일대일로만 대화할 수 있어서 촉점화나 촉수화를 통역하는 보조인이 필요합니다. 헬렌켈러센터에서는 시청각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전문가가 함께 촉수화, 시청각장애인 의사소통 방법 및 에티켓 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며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전문 통역사를 양성합니다.


촉수화를 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

촉수화를 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


모든 시청각장애인이 통역사를 지원받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다른 대안으로는 점자정보단말기의 보급입니다. 점자정보단말기는 시청각장애인의 교육과 의사소통을 위한 주요한 도구지만, 가격이 비싸 개인적으로 구매하기 힘듭니다. 헬렌켈러센터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가의 점자정보단말기를 살 수 없는 시청각장애인에게 무상으로 기기를 제공하여 의사소통과 사회참여 등을 돕기 위해 점자정보단말기의 대여 및 보급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점자정보단말기는 점자와 문자를 상호 호환해주는 기기로, 시각과 청각 기능이 동시에 손실된 시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하는데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독서나 공부, 문서 작업 등을 할 수 있으며 인터넷 연결도 가능해 정보를 검색하거나 모바일 메신저도 할 수 있습니다. 시청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며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돕기 위해 앞으로도 시청각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점자정보단말기 지원사업을 지속·확대할 계획입니다.

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하는 시청각장애인의 모습

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하는 시청각장애인의 모습 


시청각장애인이 참정권을 실현하는 모습을 통해 시청각장애인 권리 보장을 주장하고, 시청각장애의 특성을 알리고자 ‘시청각장애인은 어떻게 투표할까? 시청각장애인 투표 V-log’ 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시청각장애인 손창환 씨가 모의 투표를 체험해보고 점자 공보물을 읽는 모습,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로부터 촉수화 통역을 지원받아 실제로 투표에 참여하는 모습 등이 담긴 이 영상은 제11회 ‘2022년 함께하는 기업 어워드 & CSR 필름페스티벌’의 평등한 사회 부문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세상으로 나온 이들을 위한 응원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17년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1개월간 외출하지 못한 시청각장애인(14.5%)은 전체 장애인(5.2%)보다 3배나 높게 나타난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 확산이 오히려 시청각장애인들이 더욱 외부와 단절되게 했습니다.

이러한 단절을 없애고 새로운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양떼목장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나들이는 온누리선교재단, 온누리교회 사회선교본부, 누리사랑부, (사)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 동남로타리클럽, ㈜동성실업의 후원으로 마련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웃인 시청각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함께 한 이번 여행에는 15명의 시청각장애인과 활동지원사, 촉수화 통역사 등이 함께 했습니다. 양들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는 등 다양한 촉감 활동을 통해 시청각장애인들이 외부 활동을 하며 따뜻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헬렌켈러센터는 시청각장애인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잠재된 재능을 찾아 시청각장애인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양떼목장 체험을 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의 모습'>
<p style= 양떼목장 체험을 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의 모습


제한된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이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통해 타인과 함께 자유롭게 소통하고 세상에서 더 이상 소외되고 고립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주세요,

지역 사회 내 시청각장애인의 사회 재활과 사회 통합을 위한 당신의 관심은 시청각장애인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헬렌켈러

Hope sees the invisible, feels the intangible, and achieves the impossible.


글. 홍보실 정이든

  • 2023년 겨울호 Vol.80
    2023년 겨울호 Vol.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