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M | 틈에서 보다] 우리는 아이들의 손바닥에 무엇을 쓰고 있을까? – 시청각장애아동의 교육

2026.04.21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서 시청각장애아동 은혜는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로 등장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세상은 거대한 침묵이다. 주인공 재식은 처음에 은혜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그는 깨닫는다. 은혜가 세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은혜의 손바닥 위에 세상의 언어를 적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영화 속 은혜의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 시청각장애아동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출처: 파인스토리)


우리는 흔히 장애를 시각이나 청각, 지체 등 개별 항목으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단순히 결합된 상태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경로 중 시각과 청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이 두 감각이 동시에 차단될 때, 남은 통로는 오직 촉각뿐이다. 이처럼 시청각장애는 두 장애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형성한다. 전문가들이 시청각장애를 '제3의 장애'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 인력과 전담기관 설치가 법에 명문화됐고, 보건복지부는 헬렌켈러센터를 전담기관으로 지정하며 지원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현실은 여전히 차갑다. 시청각장애아동이 공교육 안에서 자신의 특성에 맞는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은 전국에 단 한 곳도 없다. 시청각장애아동은 촉각을 기반으로 한 고도로 개별화된 교육이 필요하지만, 전문성을 갖춘 교사도, 그런 환경을 갖춘 기관도 없는 상태에서 많은 아이들이 일반학교나 특수학교에 배정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어와 사고가 형성되는 영유아기(0~6세)는 인간 발달의 임계기다. 일반 아동은 이 시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방대한 정보를 흡수하고, 그 정보들이 쌓여 개념과 언어와 세계관이 된다. 시청각장애아동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에 적절한 촉각적 자극과 소통 방식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제한되고 인지 발달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치료 시기를 놓쳐 성인이 되고 발달장애를 갖게 돼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어릴 때부터 적절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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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은 장애인교육법(IDEA)에 근거해 3세부터 21세까지 모든 시청각장애아동에게 개별화된 무상 공교육을 법적 권리로 보장한다. 독일은 하노버 시청각장애학교를 운영하며 졸업 이후에도 일터와 주거 등 생애주기별 지원을 이어간다. 이 나라들에서 시청각장애아동에 대한 전문 교육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 권리로 확립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적 근거는 마련했지만, 그것을 현실로 구현할 전문 교육기관과 인력이 아직 부족하다.

시청각장애아동에게 교육은 생존의 문제다. 보고 듣는 것이 불가능한 아이에게 세상과 연결될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 아이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아이들의 임계기는 머뭇거리기엔 너무 짧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출처: 파인스토리)


영화 속 재식이 은혜의 손바닥에 글자를 적으며 소통하기 시작했을 때, 은혜의 세상에는 비로소 빛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시청각장애아동의 손바닥 위에 무엇을 써 내려가느냐가, 그 아이들의 세계가 열릴 것인지 닫힐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과 5월 5일 어린이날 사이를 보내고 있는 지금이, 시청각장애아동들의 세상에 환한 기적을 선물해줄 방법을 논하기 가장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