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6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방, 그 안에서 마주한 손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안, 시계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시각과 청각 기능이 동시에 손상된 중복장애인, '시청각장애인'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 시청각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시청각장애인은 약 1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은 독립된 장애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의 30.6%는 혼자서 외출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상생활의 문턱마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립과 소통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국내 최초로 설립된 시청각장애인 전문 지원기관인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아주 특별한 동행을 이어오고 있다. 바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또 다른 당사자를 찾아가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동료상담가사업'이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내가 그 마음을 압니다" 동료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
일반적인 상담은 비장애인 전문가가 장애인 내담자를 지원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시청각장애인의 삶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익숙한 집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 갔을 때,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몇 걸음을 걸어야 하고 어디에 몸이 부딪히는지 온몸의 감각으로 익혀야 하는 막막함은 오직 당사자들만이 공유하는 삶의 언어다. 이진호 헬렌켈러센터 간사는 동료상담가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경험적 전문성’이라고 설명한다.
“비장애인이나 비당사자는 시청각장애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당사자의 삶을 100%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장애를 가진 동료상담가가 다가갈 때 내담자들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엽니다. '상상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동료상담가들은 내담자를 만나 단순히 정서적 위로만 건네지 않는다. 촉수어, 점자, 손가락 점자를 비롯해 문자를 점자로 변환해 주는 장비인 '한소네(점자정보단말기)' 사용법을 일대일로 밀착 교육한다. 가족과도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고립되어 있던 지방의 당사자들에게, 동료상담가의 정기적인 방문은 한 달 내내 기다려지는 일이 되곤 한다.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 교육 현장
수혜자에서 기여자로... 광주에서 일어난 선순환
최근 헬렌켈러센터의 동료상담가사업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헬렌켈러센터로부터 동료상담과 점자 및 한소네 교육을 받던 광주지역의 수혜자 2명이 최근 동료상담가로 새롭게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단절된 채 도움을 받던 이들은 동료상담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스스로 실력을 갈고닦아 이제는 다른 시청각장애인을 돕는 동료상담가로 거듭났다. 아픔의 끝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른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이는 동료상담가사업이 단순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고 또 다른 기적을 만드는 선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시간 상담을 위한 16만 원'의 여정... 우리가 채워야 할 온기
그러나 이 동행을 지속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현실적인 장벽 또한 존재한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동료상담가는 단 5명에 불과하다. 자조모임이나 복지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에 비해, 지방에 거주하는 시청각장애인들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동료상담사들이 강릉, 대전, 광주 등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활동지원사와 함께 길을 나서는 이유다.
하지만 상담사 한 명이 지방으로 한 번 움직일 때 드는 비용은 약 16만 원. 여기에는 왕복 교통비와 식비가 겨우 포함되어 있어 활동하는 당사자들에게도 넉넉지 않은 금액이다. 게다가 시청각장애인 동료상담가 양성을 위한 6시간의 기초 교육에는 수어통역사 최소 2명이 전담 배치되어야 해 수백만 원에 달하는 통역 비용이 발생한다. 한정된 예산 탓에 상담의 빈도를 늘리거나 상담사의 수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일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청각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똑같은 구성원이며,
누군가를 돕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주체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이진호 간사의 말처럼, 이들의 동행이 끊어지지 않으려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관심, 그리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기다릴 사람이 생기고, 소통법을 배우는 것만으로 시청각장애인들의 삶은 한 단계 더 나아질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그들의 손길이 더 널리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손을 맞잡을 차례다.
시청각장애인 동료상담가가 내담자와 소통하며 상담을 진행하는 모습
글: 밀알복지재단 대학생기자단 7기 C팀ㅣ이주하 · 김나영
·
박민욱
더 많은 소식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