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가 KSD나눔재단 후원으로 ‘2026 시청각장애아동 교육 국제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시청각장애아동 교육 선진국, 일본의 요코하마 훈맹학교 호시 유코(Hoshi Yuko) 학교장을 초빙하여 현장의 사례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국내 유관기관 당사자와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시청각장애아동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효과적인 교육 접근 방법과 방향성을 살펴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훈맹학교의 호시 유코(Hoshi Yuko) 학교장을 소개하는 밀알복지재단 홍유미 헬렌켈러센터장
시청각장애아동 교육,
왜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할까요?
시청각장애는 태아 때 미리 확인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대개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부모님이 반응을 살피며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 상태를 최대한 빠르게 인지하여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요코하마 훈맹학교는 0세 영유아기부터 교육 상담과 신청이 가능하여, 장애 발견 직후부터 체계적인 개별 지원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요코하마 훈맹학교는 1889년 미국 선교사 샬럿 드레이퍼가 설립한 곳으로, 일본 내 67개 맹학교 중 유일한 사립 맹학교입니다. 현재 일본 내에서 유일한 사립 시청각장애 교육기관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시청각장애 학생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교육 과정은 일반부와 치료부로 나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개별화 교육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고 국가자격 취득 등 사회적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훈맹학교의 호시 유코 교장
일본 사례로 본 체계적인 교육 방향:
‘개별화 교육’과 ‘경험 중심 교육’
시청각장애아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개별화 교육’과 ‘경험 중심 교육’입니다. 시청각장애는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제한되는 특성상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렵고, 아동마다 감각 활용 방식과 의사소통 방법도 크게 다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세밀하게 파악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합니다. 또한 설명 중심의 학습만으로는 개념 이해가 어려워, 직접 만지고 움직이며 촉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교육 방식이 필요합니다.
요코하마 훈맹학교의 호시 유코(Hoshi Yuko) 학교장은 현장에서 적용되는 교수법을 영상을통해 소개했습니다. 식사 전 숟가락, 미술 시간 전 작업복을 미리 만져보게 해 다음 활동을 예측하도록 돕는 ‘오브젝트 큐(Object Cue)’, 교사별 고유의 촉각 단서를 활용해 소통 대상을 인지하게 하는 ‘네임 사인(Name Sign)’, 그리고 경험한 물건을 일기장에 붙이며 시간의 흐름을 체득하는 ‘실물 일기’ 등은 아이들이 감각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경험 중심의 개별화 교육은 단편적인 감각 정보에 머물던 아동이 일상생활을 스스로 영위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일본 요코하마 훈맹학교의 학습 현장 (영상제공: 요코하마 훈맹학교)
기술보다 깊은 ‘관계 형성’
강연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맞춤형 체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계 형성’이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청각장애아동에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낯선 물건을 만지는 것은 극도의 공포일 수 있습니다. 이때 교사들은 아이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습니다. 대신 교사의 손등 위에 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얹어 안전함을 먼저 느끼게 한 뒤, 함께 천천히 세상을 탐색해 나갑니다.
실제로 바람을 설명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선풍기 바람을 느끼게 하고, 쌀을 씻는 촉감부터 밥솥 수증기의 온기를 느끼는 일상의 전 과정을 공유합니다. 아이가 비로소 "내가 이해받고 있다"라고 느끼며 작은 몸짓과 표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교육은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아이의 아주 미세한 반응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소통의 신호로 확장해 나가는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다리에 올라가 선풍기 바람을 느끼는 시청각장애아동 (사진제공: 요코하마 훈맹학교)
국내 시청각장애아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번 세미나는 단순히 해외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국내 시청각장애아동 교육 현장의 한계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법상 시청각장애는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시각과 청각 장애 중 하나를 '주 장애'로 선택해야만 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두 감각이 모두 차단된 시청각장애인의 특수한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욕구 및 실태조사 연구’(2017)를 보면, 국내 시청각장애인으로 추청되는 1만여명 중 32.7%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장애인(11.6%)에 비해 3배가량 높은 수치입니다. 이처럼 시청각장애아동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일반학교나 특수학교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해 헬렌켈러센터와 같은 기관에 교육을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청각장애라는 장애 특수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전문 인력, 학습기구 등을 포함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시청각장애를 독자적인 장애 유형으로 인정하는 ‘한국형 헬렌켈러법’ 제정과 시청각장애인의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가 시급합니다.
“가장 소외된 이들 곁에 머무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
2026 시청각장애아동 교육 국제세미나에서 수어로 ‘헬렌켈러센터’를 표현하는 참여자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현재 29명의 시청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1대1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등 제도적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장의 교사와 부모들이 아이의 신호를 포착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시청각장애 아동 촉감교육 매뉴얼’을 오는 7~8월 중 발간하여 배포할 예정입니다.
시청각장애아동 교육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명의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에 맞는 소통의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는 분명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보건복지부기 지정한 국내 유일의 ‘시청각장애인 지원 전담기관’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앞으로도 다양한 교육, 연구, 옹호 사업 등을 추진하며 시청각장애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의 시청각장애인지원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