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6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출처 넷플릭스
“그때도 엄마가 얘기했잖아. 그래야 점수 낮게 나온다고”
“다른 때는 시험 볼 때 모르는 것도 다 풀라 그러더니 지금은 왜 그러는 건데”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속 이 대화는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엄마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탁을 한다. 시험에서 일부러 틀리라는 것.
그러나 딸은 그 요청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를 풀었고, 결국 기준을 아주 조금 넘는 점수를 받았다.
그렇게 딸은 지적장애 판정을 받지 못한다.
이 장면은 극적인 설정처럼 보이지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애는 언제부터 장애가 되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인정받는 기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이다.
인구대비 등록장애인 비율 추이. 출처 보건복지부
이는 한국의 ‘장애 출현율’만 봐도 알 수 있다. 2025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등록 장애인 비율, 즉 장애 출현율은 약 5%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약 15% 내외)에 비해 현저히 낮다. 숫자만 놓고 보면 긍정적인 지표처럼 보인다.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정말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적은 사회일까.
문제는 장애의 존재가 아니라 인정에 있다.
현재의 장애 판정 체계는 상태를 하나의 기준선으로 나눈다. 예컨대 지적장애 3급은 IQ 70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69와 71 사이의 차이는 수치상으로는 미미하지만, 제도는 이 둘을 전혀 다른 존재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 고시 장애정도판정기준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을 경우 장애인정을 받을 수 없다.
해외 실정은 다르다.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 등은 제도별 기준을 달리해 근로능력평가·직무적격성평가·경제적 기준·의학적 기준 등으로 장애를 판정하고 복지혜택을 부여한다. 한국처럼 수치화된 기준에 국한하지 않고, 필요 대상의 일상을 관찰해 맞춤형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국가는 ‘장애인인가 아닌가’ 대신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를 먼저 묻는다.
출처 픽사베이
그러나 한국의 제도는 여전히 기준선의 안과 밖을 가르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장애를 좁게 정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판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이들이 도움에서 배제된다는 의미다. 활동지원서비스, 의료비 지원, 보조기기 지원, 직업 재활 서비스 등 대부분의 제도는 등록 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기준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지원을 받기 어렵다. 필요는 존재하지만 자격이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인정받지 못한 장애의 현실이다.
이들은 제도 밖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인식에서도 배제된다. 특히 경계선 지능이나 정신질환과 만성질환처럼 ‘보이지 않는 장애’의 경우 그 어려움은 쉽게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기능의 제약을 겪고 있음에도 주변은 이를 노력 부족이나 의지의 문제로 해석한다.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하고, 존재조차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보이지 않는 장애는 설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장애가 된다.
결국 이는 개인의 삶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확장된다. 장애가 등록되지 않는 순간 그들의 존재는 통계에서 사라진다. 정책은 등록된 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되기 때문이다.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정책의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결과적으로 실제 수요보다 축소된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 틈에서 더 많은 사람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등록되지 않음은 곧 보이지 않음으로, 보이지 않음은 배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장애 출현율이라는 숫자는 다시 읽혀야 한다. 낮은 출현율은 장애인이 적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제도가 장애를 좁게 정의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명확하게 보이는 장애만을 장애로 인식하고,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출처 넷플릭스
다시 드라마 속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아이에게 “일부러 틀리라”고 말하는 엄마의 선택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선택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기준선 안으로 들어가야만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문제를 직면하지 못한 채 기준만 강화된 제도는 사람들을 경계선 위로 밀어 올린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탈락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장애 출현율이 낮다는 사실은 이제 질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얼마나 적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경계 밖에 머물러 있는가’다. 장애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준 밖으로 밀려날 뿐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사이에 생겨난 틈이다. 오늘날, 그 틈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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