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알복지재단·KOICA, 9년간 현지 기관과 장애인 직업재활사업 추진
■ 장애인 399명 지원...264명 소득창출·80명 취업 연계, 평균 소득 78% 증가
■ 실무형 장애포괄적 직업훈련지침 마련·확산...올해 12월 현지 이양
VOICE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확장한 사비타 타파(Sabita Thapa)씨의 작업 현장
“장애가 누구의 꿈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네팔에 사는 사비타 타파(Sabita Thapa·25세)씨는 전기 결함이 있던 공공 고압 전선에서 심각한 감전 사고를 당한 뒤 장애를 갖게 됐다. 이 사고로 양손을 절단하고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사고는 가족의 삶까지 뒤흔들었다. 오토바이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아버지와 채소를 파는 어머니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이어가던 상황에서 막대한 치료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갑작스럽게 장애를 갖게 된 사비타씨 역시 한동안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사비타씨는 학업을 이어가며 작은 저축금으로 수제 클레이 주얼리와 공예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공부하던 책상을 작업대로 삼아 제품을 만들고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그러나 부족한 자본과 장비 탓에 생산량은 늘지 않았다. 당시 월평균 소득은 약 5,000네팔루피(NPR), 한화로 약 5만원 수준에 그쳤다.
전환점이 된 것은 VOICE(Vocational Opportunity for Inclusion to Community & Employment) 프로젝트였다. 사비타씨는 기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계획서를 제출했고, 심사를 거쳐 비즈니스 성장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후 3D 프린터와 레진 몰드, 생산 도구 등 약 11만NPR(한화 약 100만원) 상당의 장비와 원자재를 지원받았다.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몰드를 직접 제작하게 되면서 생산비는 낮아지고 제품의 품질과 생산 효율은 높아졌다. 다른 사업자에게 몰드와 커터를 제작해 판매하는 새로운 소득원도 생겼다. 현재 월평균 소득은 35,000~40,000 NPR(한화 35~40만원)로 지원 전보다 7~8배 증가했다. 사비타씨는 가족의 생계를 돕고 동생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치료비로 빌린 대출금도 조금씩 갚아가고 있다.
사비타씨는 장애인 권익 옹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신에게 장애를 남긴 감전 사고의 위험을 알리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비타씨는 “VOICE 프로젝트는 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며 “제 비전을 믿어주고 자신감을 키워주었으며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재봉 훈련생들이 사회참여 경험을 넓히기 위해 자조모임의 일환으로 지역사회 현장체험을 진행했다
VOICE 프로젝트는 밀알복지재단과 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시민사회 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함께 수행하는 장애인 직업재활 사업이다. 밀알복지재단은 현지 파트너 기관인 네팔 척수장애인협회(SISN)와 협력해 2018년부터 네팔 카브레 지역에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사업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업 1단계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장애인이 직업기술을 익히고 경제활동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재봉과 사무직 기초훈련, 마케팅 교육을 진행하고 재봉틀과 원단 등 창업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다. 후천적 장애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참여자가 많은 점을 고려해 장애인 동료상담과 심리상담, 자조모임도 함께 운영했다. 훈련을 마친 뒤 지역사회로 돌아가 취업이나 창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례관리와 사후관리도 병행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2단계 시기에는 훈련생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했다. 사례관리자가 훈련생의 거주지역을 찾아 상권과 접근 가능한 시설, 가족과 이웃의 지지체계 등을 살피고 각 참여자에게 적합한 경제활동 계획을 함께 세웠다. 장애인 수료생이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고 직업훈련 강사로 성장해 지역주민에게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장애인이 지원 대상에서 지역사회의 교육자이자 경제 주체로 역할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2024년부터 시작된 마지막 3단계에서는 미취업 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과 취업 연계, 취업 후 고용유지 지원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이미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에게는 사비타씨와 같은 비즈니스 성장 지원을 제공했다.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지방정부 등을 대상으로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권리 및 옹호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네팔 직업훈련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실무형 장애포괄적 직업훈련지침
특히 VOICE 프로젝트의 성과는 개별 장애인의 취·창업 지원을 넘어 네팔 직업훈련 현장의 장애포괄성을 높이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네팔 직업훈련청(CTEVT), 장애인 당사자와 단체, 의료·재활 및 건축 전문가들과 협력해 네팔 직업훈련 현장에 적용 가능한 실무형 장애포괄적 직업훈련지침을 수립했다. 지침에는 장애인 훈련생을 선발할 때 고려할 사항부터 직원의 태도, 장애에 대한 올바른 용어, 장애포괄적 시설의 규격과 기준 등이 담겼다. 지침이 운영 기준에 머물지 않도록 확산 활동도 이어졌다. 정부 기관과 직업훈련센터를 대상으로 국가 컨설팅 워크숍을 진행하고, 다른 직업훈련 기관에서도 해당 지침을 적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옹호 활동을 펼쳤다.
지난 9년간 VOICE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은 장애인은 총 399명이다. 이 가운데 385명이 훈련을 수료했고 264명이 창업이나 소득 창출 활동을 시작했으며 80명이 취업에 연계됐다. 참여자들의 평균 소득은 지원 전 6,285NPR(한화 약 6만원)에서 지원 후 11,191NPR(한화 약 11만원)로 약 78% 증가했다.
밀알복지재단은 올해 12월 지난 9년간 축적한 사업 경험과 운영 기반을 현지에 이양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지 기관이 직업훈련과 사례 관리, 수료생 사후관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인근 지방 정부와는 사업 연계와 재원 확보 방안을 협의 중이다.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는 “소득 창출을 넘어 스스로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장애인분들의 변화를 보며 사업의 의미를 다시금 느낀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구축한 장애포괄적 직업훈련 모델이 네팔 전역으로 확산되어 더 많은 장애인에게 기회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