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회전문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변호사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 로펌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회전문' 때문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회전하는 문은 진입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 관문이자, 온몸의 감각이 뒤흔들리는 장벽이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동료 이준호는 '왈츠 박자'를 제안하고, 영우는 "원, 투, 쓰리" 숫자를 세며 춤을 추듯 위태롭게 그 문을 통과합니다.
회전문 앞에 서 있는 우영우 (자료: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많은 시청자는 이 장면을 주인공의 성장을 응원하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틈'을 내어 다시 보아야 할 지점은 영우의 노력이 아니라, 왜 그 문이 누군가에게는 춤을 추듯 분투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장벽'이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달려 있지만, 들어갈 수 없는 문
건축학적으로 회전문은 냉난방 효율을 높이고 외부 먼지를 차단하는 현대 건축의 집약체입니다. 하지만 이 효율성의 기준은 '일정한 속도로 걷고, 문이 밀어내는 압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신체'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비장애인의 신체 조건과 감각만을 '표준'으로 삼은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구조상 진입이 어렵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문의 속도와 압력은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국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어느덧 90%에 육박(89.2%)합니다. 숫자만 보면 거의 다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준에 맞게 제대로 설치된 비율은 79.2%에 그칩니다. 공원(77.9%)이나 공연장 관람석(65.4%)처럼 일상적으로 자주 찾는 곳일수록 상황은 열악합니다.
문은 달려 있지만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턱없이 좁거나, 점자블록이 엉뚱한 곳에서 끊겨 있는 '반쪽짜리 편의'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회전문처럼, 겉보기엔 현대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처음부터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공간들이 우리 일상 곳곳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디지털과 고용, 또 다른 형태의 회전문
이러한 ‘설계된 배제’는 건물 입구를 넘어 우리 일상의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근 어디에나 놓인 키오스크는 장애인에게 또 다른 형태의 회전문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이 이용하기 가장 어려운 무인정보단말기로 키오스크(80.1%)가 꼽혔습니다.
최근 한 시각장애인 분은 키오스크 앞에서 느낀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매끈한 스크린을 아무리 더듬어도 음성 안내가 없으면, 그건 우리에게 이용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휠체어 이용자의 손이 닿지 않는 화면 높이, 시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음성 안내 부재는 장애인에게 다시 한번 기계의 설계에 자신을 맞추는 ‘디지털 왈츠’를 강요합니다. 기계가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계의 박자에 맞춰 분투해야만 주문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벽들은 단순히 불편을 넘어, 장애인이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장애인에게 장벽을 넘는 방법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장벽 자체를 낮추는 것일까요?
'배려'가 아닌 '표준의 확장'
우리는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시혜적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신 우리 사회가 설정한 '표준'이 너무 좁지는 않았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왈츠를 추지 않아도 되는 자동문을 만들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설계하는 것은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배려’가 아닙니다. 그것은 유모차를 미는 부모나 걸음이 느려진 어르신 등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상에서 필요한 길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자폐를 가진 변호사 영우가 박자를 맞춰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에 열광하기보다, 누구든 자신의 속도대로 평범하게 드나들 수 있는 '보통의 문'을 만드는 것에 우리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자료: ENA <이상한변호사 우영우>
마침내 회전문을 지나 로비에 발을 내디뎠을 때 영우가 느꼈던 그 해방감이,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당연한 권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회전문 옆에 나란히 놓인 '보통의 문'을 늘려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사회통합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