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채널M | 틈에서 보다] 장애인의 부모됨을 묻는 사회에게

2026.07.27




영화 <아이 엠 샘>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아이 엠 샘>의 샘은 딸 루시를 홀로 키우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버지로, 양육 능력을 의심받아 딸과 헤어질 위기에 놓인다. <코다>의 프랭크와 재키는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다. 이들은 딸 루비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지역사회와 생업의 현장, 부모로서 직접 말하고 판단해야 할 순간에도 청인인 딸 루비의 통역을 거쳐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영화 속 부모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한다. 샘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루시와 수요일에는 레스토랑, 금요일에는 노래방을 가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프랭크와 재키는 루비의 노래를 들을 수 없지만, 루비의 목에 손을 대고 진동으로 노래를 느끼며 딸의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두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아이를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러나 장애인 부모의 삶은 자주 사랑보다 능력으로, 관계보다 자격으로 판단된다. 

두 영화가 남긴 질문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완벽한 능력을 갖춘 사람일까. 아니면 부족함 속에서도 아이를 사랑하고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일까. 영화 속 질문은 스크린 밖으로 이어진다. 



이미 존재하는 삶, 여전히 질문받는 부모됨




만 18세 이상 장애인의 결혼 상태 추이. 출처: 보건복지부 「2023년 장애인실태조사」



장애인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발표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중 배우자가 있는 경우는 51.8%에 달한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2026년 발표된 논문 ‘지적장애가 있는 부모의 현황과 실태에 대한 학술적 탐색’은 국가 단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만 18세 이상 성인 지적장애인 중 자녀를 둔 집단의 규모를 약 2~3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는 대략 성인 지적장애인 10명 중 1~2명에 해당한다. 장애인의 부모됨은 영화 속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되기 전부터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게끔 한다. 임신해도 괜찮은지, 출산을 감당할 수 있는지, 아이를 돌볼 수 있는지, 주변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수많은 물음표가 그들을 따라다닌다. 부모됨은 개인의 삶의 선택이지만, 장애인의 부모됨은 사회가 심사해야 할 문제처럼 여겨지곤 한다.


같은 도움, 다른 잣대

이러한 시선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비장애인 6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69.9%가 ‘직접 양육이 어려운 장애인 부부는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응답했다. 반면 94%는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의 모·부성권 보장을 위해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장애인의 부모됨을 향한 우려와 그 부모됨을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이 결과는 장애인의 부모됨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복잡한 시선을 보여준다. 장애인 부모의 임신과 출산을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지원의 필요성이 장애인 부모에게만 부모 자격의 부족으로 해석된다는 데 있다. 

장애인이 임신과 출산, 양육의 과정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접근할 수 있는 의료기관, 충분한 의사소통 지원, 장애 특성을 이해하는 의료진, 산후조리와 돌봄 서비스, 쉬운 양육 정보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은 특별한 배려라기보다 부모가 아이를 안전하게 낳고 기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에 가깝다. 즉, 장애인의 부모됨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닌 모두가 마땅히 도와야 하는 삶의 과정이다.

이는 비장애인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이를 온전히 혼자 키우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비장애인 부모도 가족과 이웃, 학교, 병원과 지역사회에 기대어 아이를 키운다. 누구나 도움을 받으며 부모가 되어간다. 그러나 비장애인 부모가 도움을 받으면 ‘함께 키우는 일’이 되지만, 장애인 부모가 지원을 필요로 하면 ‘혼자 키울 수 없는 증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원의 부재로 양육을 버거워하는 상황조차 장애인 부모 개인의 한계로 돌려질 때, 사회는 다시 묻는다. “역시 혼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같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공동체의 역할로, 누군가에게는 부모 자격을 의심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것이다. 




영화 <코다>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장애인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을 증명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심사하는 시선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들이 부모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는 지원과 지지다. 영화 속 샘과 프랭크, 재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지 애틋한 부모의 사랑만이 아니다. 이들은 질문한다. 우리는 장애인 부모의 사랑과 책임을 부모됨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있는가. 장애인이 한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는 삶을 특별한 예외가 아닌 평범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그 마을이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는 물으려 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부모됨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의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준비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그 마을은 장애인 부모에게도 열려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