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2시 KBS1 뉴스 화면 속, 단정한 모습과 또렷한 발음으로 생활 뉴스를 전하는노희지 앵커.KBS 제8기 장애인 앵커로 발탁되어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로 활약 중입니다.
사진 출처: KBS 국내 최초 청각 장애인 앵커 ‘KBS 제8기 장애인 앵커’ 노희지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앵커라는 직업에 도전해 당당히 뉴스룸에 선 그녀가 밀알복지재단의 장애인식개선 유튜브 채널 ‘알티비-아는친구’에 찾아왔습니다!
사람들과 세상 사이에 따뜻한 다리를 놓아주고, 소외되기 쉬운 목소리들을 세상에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노희지 앵커는 과연 어떻게 앵커의 꿈을 이루었을까요?
선천성 청각장애에도 학급 반장을 놓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노희지 앵커는 청각장애 3급으로, 보청기를 빼면 비행기가 지나가는 큰 소리 정도만 겨우 들릴 만큼 잔존 청력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장애 판정은 13살 무렵 받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부모님도, 본인 스스로도 청각장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활발하고 밝았던 그녀는 쾌활한 성격 덕분에 학창 시절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청기를 끼지 않았던 초등학교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학급 회의는 어린 희지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친구들이 '복도'라고 말한 것을 '포도'로 잘못 들어 망신을 당하거나 사차원이라며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해 친구들의 오해를 사고 관계가 틀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 유튜브채널 ‘알티비’
보청기를 착용한 이후의 삶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소음과 말소리가 함께 증폭되는 보청기의 특성 때문에 시끌벅적한 급식실은 가장 힘든 공간이었습니다. 식판을 긁는 소리, 전교생이 떠드는 소리에 친구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그 속에서 친구들과의 대화를 눈치로 알아채는 데 온 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 탓에 밥은 늘 체하기 일쑤였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아예 저녁 급식을 먹는 대신 혼자 화장실에서 빵을 먹으며 견뎌내기도 했습니다. 장애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너 귀 안 들려?"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절망했습니다.
‘장밍아웃’을 결심한 이유
장애를 철저히 숨기며 지내왔던 노희지 앵커에게 성인이 된 이후 극심한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장애 그 자체보다 장애를 숨기기 위해 소모해야 하는 에너지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노희지 앵커와 똑같은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여섯 살 아래의 동생이었습니다.
노희지 앵커는 "내가 스스로를 혐오하고 장애를 부끄러워한다면, 동생 역시 앞으로 세상과 마주할 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깊은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동생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었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장애를 세상에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밍아웃’(장애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됩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이뤄낸 아나운서의 꿈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의 경우, 소리를 듣고 따라 하며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정확한 발음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청각장애인이 말하는 직업을 갖는 것은 어렵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희지 앵커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입안에 볼펜을 물고 연습하다 입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시옷(ㅅ)과 지읒(ㅈ) 등 정확하게 소리 내기 힘든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설압자로 혀의 위치를 고정해가며 강도높은 훈련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이제 생방송 스튜디오에서 왼쪽 귀에는 보청기를, 오른쪽 귀에는 인이어를 착용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달합니다.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듣고 말하는 것이 어렵다는 편견을 넘어, 대한민국 최초 청각장애인 앵커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의 소외된 목소리를 전하는 당당한 앵커로
피나는 노력과 수많은 시련을 견뎌온 시간은 그녀에게 장애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장애가 자신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제 노희지 앵커는 단순히 KBS 뉴스룸을 지키는 앵커를 넘어, 장애 때문에 꿈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