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 관객 돌파 군체, 휠체어를 탄 그 배우는 누구일까
지난 5월 21일 개봉해 불과 14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감염 재난 영화 <군체>.
기존 재난 영화들과 달리, 감염체들이 하나의 '집단지성'을 이루어 인간을 압박한다는 독창적인 설정과 밀폐된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생존 사투가 신선하고 압도적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 넷플릭스]
배우들의 열연과 다채로운 캐스팅 역시 연일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영화의 흥행과 함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캐릭터도 있습니다. 바로 극 중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채 휠체어를 타고 감염체들에 맞서 싸우는 IT 업체 직원 '최현희' 캐릭터입니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 넷플릭스]
그동안 미디어 속 장애인 캐릭터가 도움을 받는 역할로 그려졌다면, 극한의 재난 속에서 통제실을 확보하고 생존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등 최현희는 상황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갑니다. 이처럼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려질수록, 관객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를 연기한 배우에게로 향합니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 넷플릭스]
그렇다면 최현희를 연기한 배우는 실제 장애인이었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최현희를 연기한 김신록 배우는 비장애인입니다. 김신록 배우는 해당 역을 훌륭히 소화하며, 장애인의 주체성을 역동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분명 중요한 성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크리핑 업(Cripping up)', 캐릭터는 장애인, 배우는 비장애인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것을 문화계에서는 '크리핑 업(Cripping up)'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흑인이 아닌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던 '블랙페이스'가 사회적 논의를 거쳐 지양되어 온 것처럼, 크리핑 업 역시 장애인 배우의 일할 기회를 좁히고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달할 가능성을 줄인다는 점에서 점점 더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화 <시라노>의 한 장면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재난 영화 특성상 험한 액션과 급박한 탈출 장면이 많은데 장애인 배우가 가능하겠냐"는 반론도 물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장애인 배우 캐스팅이 물리적 시설 개선이나 추가 통역 인원 배치 등으로 인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이미 장애인 배우를 애초에 고려하지 않은 제작 환경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배우 개인의 한계로 치부할 뿐, 정작 그 한계를 만들어낸 것이 폐쇄적인 제작 환경이라는 사실은 외면하는 셈입니다.
실제 장애인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캐스팅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삶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표현할 때, 이야기는 더욱 진정성을 갖게 되며 사회가 가진 장애인식을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 작가와 청각장애인 이소별 배우가 직접 출연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장애를 설명하기 위한 인물이 아니라, 삶과 사랑을 통해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찾고 성장해 나가는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이소별 배우와 정은혜 작가 [사진 tvN]
영화 〈코다(CODA)〉는 청각장애를 가진 주요 배역을 실제 농인 배우들이 연기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농인 배우와 소통을 통해 가구 배치와 조명을 조정하고, 통역사를 상시 배치했습니다. 그 결과 배우들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자연스럽게 연기에 녹여낼 수 있었고, 이야기의 진정성은 한층 깊어졌습니다. 특히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로이 코처는 수어로 감동적인 소감을 남기며 "장애인 배우로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영화계의 오래된 편견을 멋지게 깨부수었습니다.
영화 ‘코다’의 한 장면. (오른쪽부터) 농인 배우 다니엘 듀런트, 말리 매트린, 트로이 코처. [사진 판씨네마]
당사자가 실제로 스크린에 서는 것은 단순히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영화의 완성도와 몰입감을 한층 더 높여줍니다. 이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의 차원을 넘어,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재현을 넘어 참여로
영화 〈군체〉 속 최현희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설계됐다는 사실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이야기를 누가 연기하고, 누가 전달하는지는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영화에서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 그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실제 장애인 배우에게도 기회가 열려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로 스크린에 설 수 있는 환경을 통해 장애인 재현이 단순한 등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 참여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