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제3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 무제
2018.02.02
백정연
 
  그는 휠체어를 탄다.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어느 날,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고 했다. 13년 전 인도라는 나라에서 여행 중에 말이다. 나는 처음 그 얘기를 듣고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기분을 감히 가늠하지 못했고, 아직도 하지 못한다. 그런 그와 부부라는 인연으로 산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사실, 연애할 때 나는 그의 장애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두 번째 인생인 장애인의 삶이 내가 느낀 그의 매력 중 하나였다. 그에게 자신의 장애는 이미 온전한 자기 모습 중 하나였고, 삶에 있어 전혀 장애가 없는 그였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한 태도, 긍정적 마인드, 자신감 등에 반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 연애, 그리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왠일인가. 부부의 삶은 연인의 삶과 많이 달랐다. 그와 함께하는 내 일상에서 그의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을 나눠들지 못하고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 그를 대신해 물건을 옮겨야 하는 것, 가사 일을 혼자 해야 하는 것 등 모든 일상이 짐스러웠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짜증이났다. 그에게 그런 나의 맘을 들키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주기 보다 각자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는 일상에서 함께하는 그의 장애를 서서히 받아들였다. 다시 연애하던 때처럼, 장애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생겼고, 대부분의 시간은 익숙함으로 편안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장애인과의 결혼생활이라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남녀가 함께 살며 부부가 되는 과정의 힘듦이 아니였을까 싶다. 신혼 초반과 같이 무거운 것을 혼자 들고, 물건도 옮기고, 그를 챙겨야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지만. 그 모든 것이 짐스럽지 않고 그냥 나의 일이다 싶으며,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다. 외부의 적군(?)만 없으면 말이다.
 
# 예상치 못한 이웃이라는 적군
  작년 말 겨울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외부의 적군을 만난 날. 신도림역 근처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오던 그 날을, 내 생의 최악의 날로 꼽는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갈 생각에 남편과 신도림역에 갔다. 도무지 역사로 내려 갈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가 없어, 신도림역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한참 있다가 나타난 공익근무요원은 참으로 무뚝뚝하고, 또 우리를 귀찮아했다. 테크노마트로 들어가 미로를 통과하듯 엘레베이터를 타니 신도림역이 나왔다. 이건 정말 누구도 찾아갈 수 없는 길이다 싶어, 우리는 전철을 타는 대신 역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안내문을 친절하게 붙여주면 좋겠다고 건의를 했다. 우리 생각에는 당연하고 쉬운 요구에 돌아온 답은, 신도림역의 일이 아니란다. 테크노마트 그리고 구로구의 일이라나. 남편과 나는 같이 화가 났고, 약속해주지 않으면 집에 못 가겠다고 버텼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그들에게 흔히 말하는 진상고객이 되었다. 결국에는 경찰이 와서 중재를 하였고, 직원은 마지 못해 약속을 해줬다. 그러고 나니 새벽 4시다. 아.. 집에 어찌 가야하나. 경찰아저씨가 태워주냐 묻더니 휠체어가 안 들어갈 것 같다하니 조심히 가라는 인사를 남기고 가신다. 경찰차가 떠나고, 설움인지 화인지 모르는 감정의 복받침으로 대성통곡을 했다. 집에까지 걷다 지쳐 장콜을 부르고, 새벽의 고요함에 마음의 화가 더 크게 들렸다. 1년여가 지났지만 신도림역은 그 생각으로 아직까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 여행, 그리고 여행
  남편과 나는 종종 함께 여행을 한다. 지역은 정하지만, 어디를 들를지 정확한 스케쥴을 잡지는 않고 발길 따라 마음길 따라 그렇게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여행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 정확히는 비장애인의 여행보다 더 많은 세상을 여행한다. 장애인이 다니기 어려운 길을 보면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는 여행을 한다. 그런 길을 처음 만나는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아 걸으면서, 이 세상의 따뜻함을 여행한다. 그리고 그런 여행을 통해 또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본다. 그런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남편에게 처음 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장애인이 돼서 좋아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삶, 모두를 살 수 있어서. 나는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어요” 그래, 나도 남편 덕에 두 번째 인생을 여행하고 있다.
 
# 그의 가족이 된 나의 가족
  사실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빠의 반대. 흔히들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휠체어를 탄 사람을 사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나고난 지금에서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허락을 받기 위해, 아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기는커녕 함께 싸우고 마음을 할퀴었다. 다행히 처음부터 장애가 아닌 사람을 보았고, 그래서 허락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엄마 덕에 아빠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딸자식 키우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아빠에게 내 진심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노력하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그런 못난 딸을 가르치기라도 하듯, 지금 아빠, 우리 가족은 그의 가족이 되었다. 그의 장애는 이제 그의 모습 중 하나이고, 그가 편하게 드나들기를 원하는 마음에 3층 주택 집에서 1층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나의 가족은 그의 가족이 되었고, 우리는 가족이다.
 
# 장애의 눈으로 보는 세상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장애인복지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다. 결혼 전에도 장애가 아닌 분야에서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었고, 지금도 발달장애인 분야에서 뛰는 가슴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다. 세상을 장애인의 눈으로 보는 것.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세상이 달라보였다. 사회복지사의 눈이 아닌, 장애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서 나는 할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가슴은 더 뜨거워졌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며, 그렇게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게 우리 부부의 꿈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장애 덕에 세상을 다르게 보는, 장애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남편과의 결혼, 인생이 아니었으면 오늘 이런 글을 쓸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나의 삶에 나타난 그에게, 그리고 그가 지닌 그의 특성 중 하나인 장애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