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제3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 아름다운 벗
2018.02.06
아름다운 벗
문혜진
 
가끔 무조건적인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따뜻한 한마디 말의 위로가 필요할 때, 다른 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자연스레 한 친구가 떠올려 진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라는 것이 단순히 우정을 나눈 벗이라는 의미보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비로소 친구가 친구임을 안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의 명언처럼,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10년 전 해외봉사활동 중 예기치 않은 사고로 내가 척수장애를 입게 되었을 때, 함께 그 사고를 같이 겪은 친구는 내 마음의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되어주었다. 그 당시 친구도 발목과 허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수개월 만에 회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학교를 지어주는 건축봉사활동 중에 안전 바가 무너지며 낙상사고를 겪었다. 요추 뼈가 부러지면서 부서진 뼛조각들이 신경에 손상을 입히고 있었다. 1분 1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수술을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백방으로 한국으로 돌아 오려했으나, 수술이 안 된 위급환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항공사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있던 곳에서 8시간 떨어져있던 독일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고가 난지 5일 만이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 두 차례의 대수술을 받게되었다. 회복기를 지나 사고가 난지 두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수술자국이 아물 때까지 침대위에 누워만 있다가 휠체어를 탈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됐을 때 가장 힘든 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었다. 마비증세가 가슴 밑까지 진행된 상태라 침대 머리를 90도로 올리고 있어도 앉아있는 느낌이 꼭 구름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이 중심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에 큰 베개를 끼워놓고 뒤쪽에서는 엄마가 나를 안고는 내가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셨다. 그래야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씻는 거, 먹는 거, 누굴 만나는 것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 손길이 필요했고, 과정이 필요했다.
 
혼자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삶이 익숙했는데, 그렇게 살 수 없게 된 육체의 한계 속에서 많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길을 가다가 작은 턱 하나를 휠체어바퀴로 넘어갈 수 없을 때, 주변사람에게 “저기요, 죄송하지만 여기 턱 있는 곳을 넘어갈 수 있게 제 휠체어 좀 밀어주시겠어요?”라고 부탁하는 것이 왜 그리 민망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던지, 안갈 수는 없고 굉장히 자존감이 떨어졌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 같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잘 웃으며 지냈지만 마음속은 누구도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여기며 외롭고 우울한 마음을 감추며 지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계가 찾아왔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힘들어지고, “몸은 좀 어때?” 물어오는 이들에게 “응 괜찮아”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내뱉는 것도 허무감이 들 때, 가장 소식이 궁금했던 그 친구와 재회하게 됐다. 그날 우리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떠한 미사어구가 필요 없이 마치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한 친구의 따뜻한 눈빛에 내 마음이 녹아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내가 힘들어한 만큼 그 친구도 힘들었을 생각을 하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되고 안정이 됐다. 많은 말보다 그 친구는 행동으로 나를 향한 마음을 보여줬다. 예를 들면,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미용실을 찾는 게 여간 까다롭지 않았는데 그 사정을 아는 친구는 미용가위며, 파마세트를 사가지고 병원에 와서 내 머리손질을 해주었다. 포털창에 검색을 하면서 배워왔는데 큰 실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뻘뻘 땀을 흘려가며 나를 위해 정성을 쏟아주는 그 친구의 모습에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의 마음을 더듬어볼 수 있었기에 말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휠체어로 가기가 어렵거나 못 가는 곳에 가야 할 땐 난감하고 걱정부터 앞선다. 걱정을 하다보면, 다리가 괜찮았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일들을 걱정하고 고민한다 싶으니까, 불평불만이 되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뜨끈한 물속에 들어가 봤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예전에 두 다리 건강했을 적에 다녔던 대중목욕탕이 너무 그리워서 시도를 하려다가도 대중목욕탕을 가기엔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다는 현실 앞에 다시 주저앉게 됐다. 누가 나를 들어서 탕 속으로 넣어주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데 쉽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이런 푸념을 들은 친구는 어느 한적한 스파 장소를 물색하여 친구와 친구의 엄마, 나와 나의 엄마까지 함께 갈 여행을 계획해왔다. 나를 업고 다니면서 “이봐, 이렇게 다닐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고 싶은데 다 가자 같이 가줄게” 하는데 코끝이 매큼해지며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친구의 귀하고 예쁜 마음을 어찌 다 값을 수 있으려나,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살다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도 있고,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도 있다는 걸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당장 5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족과 친구가 나를 위해 마음을 쏟아주는 것을 느끼면서도 시시비비 일어나는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의 따뜻한 행동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던 내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밝아지게 되었다. 살면서 마음이 맞아 서로 조금도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막역지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에 존재하는 많은 형태의 사랑 중에 나는 이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사랑을 맛볼 수 있었다. 친구에게서 받은 깊고 묵직한 사랑의 힘이 내 삶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도록 해주었고, 좀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친구의 마음과 연결이 되면서 내 인생은 휠체어를 타기 전보다 감사의 조건들을 더 많이 찾을 줄 아는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었다. 절망이라고 여기던 것을 소망과 행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아름다운 그 친구를 위해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친구가 나에게 보여준 따뜻함을 그 친구의 인생에도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받은 행복의 무게를 그 친구도 맛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